헬리의 양파 구조와 오일러의 가짜 뉴스를 조사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저는 스마트폰의 구글 어스(Google Earth) 앱을 켜고 북극점과 남극점을 확대해 보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위성사진으로 보이는 새하얀 얼음 세계를 보며 "과연 이 아래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을까?" 하는 묘한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극지방 탐험의 역사를 조사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탐험가들이 북극점과 남극점에 성해를 꽂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과거 남북극이 완전히 베일에 싸여 있던 시절에는 어땠을까요? 조사를 진행하던 중, 저는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무모했던 한 군인의 선언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818년, 미국의 전직 육군 대위였던 존 클리브스 심스 주니어(John Cleves Symmes Jr.)가 전 세계 대학과 국가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는 북극에 지구 내부로 들어가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으며, 자신이 직접 탐험대를 이끌고 그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이 황당해 보이는 계획이 실제 미국 의회의 공식 안건으로 상정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저는 이 흥미진진한 인물의 행적을 더 깊이 조사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구는 텅 비어 있고 북극에 구멍이 있소" 심스의 선언
심스가 남긴 기록과 선언서 원문을 번역해 놓은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의 주장은 에드먼드 헬리의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일종의 '실천적 탐험 선언'이었습니다. 심스가 주장한 모델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지구는 두께가 약 1,600킬로미터인 단단한 껍질이며 내부에는 여러 개의 동심원 구체들이 들어있습니다.
- 결정적으로 북극에는 지름이 약 6,400킬로미터, 남극에는 약 9,6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Symmes' Holes)이 뚫려 있습니다.
- 바깥바다의 물은 이 구멍을 통해 내부 세계로 부드럽게 흘러 들어가며, 그 안쪽은 따뜻하고 생명체가 살기에 매우 비옥한 신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심스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나는 지구 내부가 비어 있으며 사람이 살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에게 100명의 용감한 동반자와 몇 마리의 썰매견을 준다면, 나는 시베리아에서 출발해 북극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일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초보자인 제 관점에서는 터무니없는 판타지 소설처럼 들렸지만, 그의 어조는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고 당당했습니다.
미국 의회를 움직인 엉뚱한 열정
도대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주장이 당대 미국 사회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을까요? 저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미국의 정치 기록들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심스는 단순한 몽상가에 머물지 않고 미국 전역을 돌며 대중 강연을 열었습니다. 그의 뜨거운 웅변에 감동한 지지자들이 늘어났고, 급기야 수천 명의 서명을 모아 미국 의회에 "북극 탐험대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822년과 1823년, 미국 상원과 하원에 실제로 이 청원안이 상정되었다는 점입니다. 토론 끝에 비록 예산 지원안은 부결되었지만, 국회의원들 중 일부는 심스의 가설에 진지하게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825년 취임한 미국의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는 이 탐험 계획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승인하려 했으나, 임기가 끝나면서 결국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습니다.
한 개인의 엉뚱한 호기심과 확신이 한 나라의 대통령과 의회를 움직였다는 사실이 제게는 무척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탐구를 마치며: 실패한 과학이 남긴 위대한 씨앗
현대 지구물리학과 인공위성 사진은 남북극에 거대한 구멍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심스의 가설은 결국 오개념으로 끝났고, 그는 평생 북극 구멍을 보지 못한 채 1829년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마치며 저는 심스의 도전이 완전히 무의미한 쓰레기 같은 역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강연과 의회 청원 소동은 당시 극지방 탐험에 무관심했던 미국 사회와 정치계에 거대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심스의 강연을 듣고 자란 청년들과 학자들이 훗날 미국의 공식 남극 탐험대(Wilkes Expedition)를 조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초보자로서 이번 역사 탐구는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지도와 엉뚱한 목적지를 품은 열정일지라도,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만듦으로써 인류의 영토와 과학의 지평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극 너머의 신세계를 꿈꾸었던 심스의 무모한 열정은,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인류가 진짜 극지방의 실체를 마주하게 만드는 위대한 첫걸음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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