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가:
1980년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심사 과정에서 '활자 배열의 기형적 왜곡' 및 '낭독 시 호흡 정지 유발' 판정을 받은 도서 2,410권은 소각 보고서가 작성되었으나 전량 파기되지 못했다. 해당 서적들은 불에 타지 않는 검은 양피 가죽으로 장정되어 있었으며, 지하 5층 화강암 암반을 파내어 조성한 제7보존서고에 비밀리 이관 격리되었다.
본 문서는 분기별 장서 점검에 투입되는 사서가 준수해야 할 유일한 물리적 생존 절차서다.
지하 5층 방폭 방화문을 개방하기 전, 작업자는 지급된 산업용 3M 귀마개를 완벽히 착용하고 실시간 암소음 측정기(Sound Level Meter)를 가슴 명찰에 고정하십시오. 서고 내의 정상 암소음은 11.0 dB ~ 12.5 dB 사이여야 합니다.
서고 깊숙이 진입할수록 공조기의 팬 회전 소리가 점점 잦아들며 소음 수치가 0.0 dB 이하(음수)로 떨어지는 구역이 나타납니다.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최저 한계를 밑도는 진공 상태의 침묵(Silence Collapse)은 정상적인 물리 현상이 아닙니다. 귀마개 안쪽에서 본인의 심장 박동음마저 들리지 않게 된다면, 즉시 발걸음을 멈추고 제1열 입구 비상등을 확인하십시오.
지하 5층 특수서고는 1982년 준공 당시 홀수 열(제1열, 제3열, 제5열, 제7열) 4개 통로만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서고 중앙에 설치된 철제 레일 손잡이를 잡고 이동할 때 시선은 반드시 진행 방향 바닥의 유도 페인트(황색 점선)만을 향해야 합니다.
만약 복도를 걷던 중 양옆의 책장이 스스로 이동하여 [제08열] 또는 [제12열] 등 짝수 번호가 음각된 통로 표지판이 시야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통로가 아니라 서가가 입을 벌린 틈새입니다. 어떤 호기심으로도 짝수 열 통로 안으로 발을 들이밀지 마십시오. 해당 틈새는 깊이가 40미터에 달하며, 바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식별 대상 도서는 표지에 제목, 저자, 출판사, 납본필증이 전무하며 오직 표면이 매끄럽게 무두질된 두꺼운 검은 가죽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도서를 서가에서 꺼낼 때는 반드시 라텍스 장갑 2겹을 착용하십시오.
정상적인 고서의 표지는 지하 5층 항온실 온도(18℃)에 맞춰 차가워야 합니다. 그러나 특정 서적의 등가죽(Spine)에 손을 얹었을 때 사람의 체온(약 36.5℃)과 흡사한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지거나, 가죽 표면 아래에서 미세한 요골동맥 박동이 감지된다면 그 책을 펼치지 마십시오.
서가에 꽂힌 책들을 계수하는 동안 반대편 책꽂이의 빈틈(책이 1~2권 빠져나간 공간)을 똑바로 쳐다보지 마십시오. 어둠 속에서 하얗게 충혈된 안구 두 개가 당신의 목덜미나 손끝을 응시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시선은 책장 너머에 서 있는 다른 사서가 아닙니다. 1984년 4월 현재 지하 5층에 진입한 인원은 당신 1명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수첩에 도서 일련번호를 적어 내려갈 때 등 뒤에서 "팔백이십사... 팔백이십오..."라며 정확히 0.3초의 시차를 두고 작은 속삭임이 메아리친다면, 절대 뒤를 돌아보거나 입으로 소리를 내어 반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호흡하는 공기를 읽어들이며 스스로를 현실의 존재로 동기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암소음 측정치: -14.8 dB (완전 진공 묵음 상태)
더 이상 전진할 경우 방폭 출구 유도선이 영구 소멸합니다.
점검이 종료되는 시점에 실시간 재고 계수기의 숫자는 반드시 정확히 2,410권이어야 합니다.
만약 계수기 화면에 2,411권이 표기되어 있다면, 방금 당신이 지나쳐온 서가 맨 끝자리에 방금 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가죽 장정본 1권이 꽂혀 있는 것입니다.
그 책의 표지에는 검은 잉크 대신 사람의 혈흔으로 방금 당신이 목걸이 명찰에 적어 둔 [당신의 사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가 금박처럼 박혀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 도달했다면 지하 5층 방화문은 외부에서 이미 용접되어 밀폐된 상태입니다.
수색 결과: 지하 5층 방폭 철문은 내부에서 전동 래치가 잠겨 있었으며, 산소 절단기로 해체 후 진입함.
현장 발견 상태: 서고 내에는 제1열부터 제7열까지 총 2,410권의 기형 서적이 완벽히 정렬되어 있었음. 그러나 제7열 막다른 벽면 바닥에서 2,411번째 서적이 추가 발견됨.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식 결과, 해당 서적의 표지는 실종된 박 사서의 등 부위 피부(Dermis layer)를 통째로 벗겨내어 제본된 것으로 확인됨. 책의 1페이지부터 48페이지까지는 박 사서가 마지막 순간까지 귀마개 속에서 기록한 수기로 채워져 있었으며, 마지막 장에는 오직 한 문장만이 반복 타자되어 있었음:
"책 속의 활자들이 내 눈꺼풀 안쪽으로 기어들어와 문장을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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