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랑 4호는 수심 3,000m 초심해에서 작업하는 6세대 반잠수식 시추선이다. 해저면에 내리는 닻(앵커)은 존재하지 않으며, 선체 하부 8기의 아지무스 스러스터가 24시간 추진력을 제어하는 DP3(Dynamic Positioning) 시스템으로만 제자리를 유지한다. 선체와 3,000m 아래 해저 유정을 잇는 것은 직경 21인치의 '머린 라이저(Marine Riser)' 단 하나이며, 배가 조류에 밀려 허용 각도 2.0도(Watch Circle 30m 반경)를 벗어나면 파이프가 파단(破斷)되어 폭발한다.
새벽 2시 14분. 동해 울릉분지 제8광구, 포항 동남쪽 290킬로미터 공해상.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뜬 반잠수식 시추선 ‘해랑 4호’는 거대한 강철 섬이었다. 수면 아래 잠긴 두 개의 거대한 부력체(폰툰)와 갑판을 떠받치는 네 개의 수직 기둥(컬럼) 아래로는 3,000미터의 수심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시추선과 3,000미터 아래 해저 바닥을 물리적으로 잇고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선체 정중앙을 수직으로 관통해 바다 밑바닥의 폭발방지장치(BOP)까지 뻗어 있는 직경 21인치의 강철 파이프, 머린 라이저(Marine Riser).
해저 3,200미터 지층에서 시작된 비정상 역류(Kick)가 3,000미터 라이저 파이프를 타고 선체까지 치밀어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40분뿐이었다.
“온도가 영하 2도입니다. 점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중앙통제실(CCR) 계측 콘솔 앞, 서도진(32) 기술원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모니터에는 해저 시추관을 타고 역류하는 이물질의 데이터가 붉은색 그래프로 요동치고 있었다.
“원유가 아닙니다. 탄화수소 반응이 전혀 안 잡혀요. 섭씨 영하 2도인데 얼지도 않고 액체 상태로 뿜어져 나옵니다. 밀도는 담수의 1.4배…… 진흙 순환 펌프(Mud Pump) 압력이 분당 30바(bar)씩 치솟고 있습니다.”
안전감독관 강태식(48)은 팔짱을 낀 채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23년간 북해와 인도네시아, 동해의 가스전을 전전한 베테랑이었지만, 영하의 온도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며 3,000미터 수압을 뚫고 역류하는 물질은 본 적도 없었다.
“초크 밸브(비상 감압 밸브) 20퍼센트 열어. 배관 터지기 전에 압력부터 분산시켜라.”
“하지만 감독님, 바다로 직접 배출하면 해양 오염 규정 위반입니다!”
“규정이 문제야? 라이저 파이프 터지면 이 배에 탄 78명 전원 수장이다. 일단 감압해.”
갑판으로 나서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기온은 영상 14도였지만, 바람에 실려 오는 공기는 냉동고 문을 열었을 때처럼 차가웠다. 해저 3,200미터에서 뿜어져 나온 영하의 검은 액체가 수온 18도의 동해 표면과 부딪히며, 시추선 주변 반경 1킬로미터 해상을 짙은 바다 안개(海霧)로 뒤덮어버린 탓이었다.
눈앞은 온통 우윳빛 장막이었다. 헬리데크 바닥의 붉은 유도등조차 10미터 앞에서는 흐릿한 점으로 번져 보였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비린내가 났다. 경유 냄새가 아니라, 햇볕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깊은 바다 진흙에 썩은 지방질을 짓이겨놓은 듯한 역겨운 악취였다.
치직—.
[해랑 4호! 여기는 해경 502편! 귀함 유도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전파고도계가 미쳤다!]
“여기는 안전감독관 강태식. 유도등 스물네 개 전원 정상 점등이다. 수직 강하 각도 유지하라.”
[안 보인다니까! 고도계가 해수면보다 40미터 위에 단단한 암반 지면이 있는 것으로 잡힌다! 전방 100미터가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는 걸로 나온다고! 기압 고도계도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친다! 외기 온도계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지고 있어! 조종간이 안 먹힌다! 밑에서…… 밑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빨아당기고 있—!]
쿵—. 충돌음이 아니었다. 거대한 젤리 덩어리 위에 수십 톤의 강철을 떨어뜨린 것처럼, 낮고 축축한 파동이 선체 바닥을 울렸다.
38미터 아래 바다를 향해 투광기를 비춘 강태식은 숨을 삼켰다.
그곳에는 파편도, 화염도 없었다. 바다가 굳어 있었다.
너울성 파도가 몰아쳐야 할 해수면이 매끄러운 검은 타르 피막으로 덮여 있었다. 헬기의 주 회전날개 하나가 수면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지만, 검은 액체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소화액처럼 날개 표면을 천천히 감싸 쥐며 수면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위잉— 위잉— 위잉—!
선내 스피커에서 귀를 찢는 주 알람이 울려 퍼졌다. 시추선 전체가 비명을 지르며 좌현으로 3도 기울었다.
[감독님! 4번, 6번 스러스터 과부하 정지(Trip)! 추진기 스크루에 엄청난 양의 섬유질 점액이 엉켜 붙었습니다! DP 위치 제어 상실! 배가 남동쪽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웰헤드 이탈 각도 1.4도…… 1.7도! 라이저 파이프 한계 각도까지 0.3도 남았습니다!]
8개 중 2개의 추진기가 멎자, 4만 5천 톤의 선체가 조류를 이기지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각도가 2.0도를 넘는 순간 3,000미터 강철 파이프는 파단(破斷)된다.
강태식은 계단을 뛰어내려가 선체 한가운데, 시추 파이프가 바다로 관통해 들어가는 지름 15미터의 거대한 수직 개구부인 문풀(Moonpool)로 달렸다.
철제 그레이팅 발판에 도착한 강태식은 숨을 헐떡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다로 내려가는 21인치 라이저 파이프를 붙잡고 있는 유압 텐셔너 실린더 여섯 개가 찢어질 듯한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압력 게이지의 바늘은 위험 수위인 600톤을 넘어 꺾여 있었다.
조류 때문이 아니었다.
조명이 비춘 짙푸른 문풀 수면 아래, 해저 3,000미터에서부터 수직으로 솟아오른 굵은 파이프 외벽을 칭칭 감아 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의 팔과 흡사하지만 마디가 대여섯 개로 꺾인 검은 유기물 덩어리 수백 개가, 파이프의 차가운 강철을 움켜쥐고 젖은 소리를 내며—
시추선 바닥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문풀의 방화 격벽을 간신히 폐쇄한 강태식. 그러나 해저 3,200m 암반 흙을 걸러내는 셰일셰이커 위로 쏟아져 내린 것은 기괴한 척추 뼈들이었고…… 1호 머드탱크 안쪽에서 48시간 전 실종된 최민재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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