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3,200m 드릴비트가 분쇄한 암반 파편(Cutting)은 고압 순환 진흙(Drilling Mud)과 함께 수면 위로 역류한다. 선체 지하의 셰일셰이커(Shale Shaker)는 진동 스크린으로 진흙과 암석 파편을 분리하는 핵심 기기이며, 그 뒤편의 머드탱크는 수만 배럴의 원유와 화학 첨가제를 보관하는 완전 밀폐형 고압 저장고다.
“문풀 격벽 닫아! 비상 유압 레버 당겨!”
강태식의 고함과 함께 문풀 상부의 20톤짜리 강철 방화 셔터가 굉음을 내며 맞물렸다. 쾅! 무거운 철문이 닫히며 3,000미터 바다에서 라이저 파이프를 타고 기어오르던 검은 형체들의 시야가 차단되었다. 하지만 차단문 틈새로 스며 나오는 영하의 냉기와 썩은 뻘흙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치직—.
[가, 감독님! 라이저 외벽만 문제가 아닙니다! 해저 3,200미터에서 머드 펌프로 퍼 올린 시추 진흙이…… 지금 하부 머드 처리실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셰일셰이커 스크린이 막혔다고 난리입니다!]
강태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시추선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엔진실이 아니다. 해저 깊은 곳의 암반 파편과 진흙, 유독 가스가 한데 모여 걸러지는 선체 최하부의 머드 모듈(Mud Module)이었다. 그곳에 불길이 닿거나 정체불명의 고압 유체가 유입되면 4만 톤의 선체 전체가 내부에서부터 붕괴할 수 있었다.
“현장 인원 전원 대피시켰나?”
[박 작업반장이랑 시추원 두 명이 아직 셰일셰이커 룸 안에 있습니다! 배관 압력 게이지가 레드존을 쳐서 밸브를 수동으로 잠그려 들어갔는데…… 무전 응답이 없습니다!]
“내가 내려간다. 너는 통제실 문 잠그고 절대 나오지 마.”
선체 지하 3층, 머드 모듈 복도는 이미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차가운 검은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배수 펌프가 헛돌며 컥컥거리는 소리를 냈고, 환기 닥트에서는 얼음장 같은 바람이 쏟아져 내렸다.
덜컹덜컹덜컹—!
선별실 문을 열자, 시추 진흙에서 돌가루와 암반을 걸러내는 3대의 대형 진동체, 셰일셰이커(Shale Shaker)가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고주파로 흔들리는 금속 메쉬망 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은 통상적인 회색 이암 파편이 아니었다.
끈적이는 검은 젤리 같은 액체 덩어리 속에 무언가 굳고 단단한 물체들이 걸려 덜컹거리고 있었다.
강태식은 방독면을 고쳐 쓰고 조심스럽게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랜턴 불빛이 메쉬망 위에 걸린 이물질을 비추었다. 돌이 아니었다.
길이 40센티미터가량의, 마디마디마다 날카로운 가시 돌기가 돋아난 척추 뼈였다. 지질학적으로 지하 3,200미터는 3억 년 전 고생대 지층이다. 그 깊이에서 발견되는 화석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거름망 위에서 떨고 있는 뼈마디에는 방금 도축된 것처럼 붉은 핏줄이 선명하게 얽혀 있었고, 뼈 틈새의 검은 근육 섬유질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박 반장! 김 씨! 어디 있어?!”
강태식의 외침은 기계 소음에 묻혔다. 시선을 돌린 그의 눈에, 셰일셰이커 뒤편 2만 배럴짜리 밀폐형 제1호 머드탱크가 들어왔다.
두께 15밀리미터의 고장력 강판으로 밀폐된 탱크 하부 배출 밸브 앞에, 박 반장의 주황색 안전모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밸브 핸들은 반쯤 잠긴 채 굳어 있었고, 바닥의 진흙탕 위에는 누군가를 끌고 들어간 듯한 굵은 궤적이 1호 탱크 상부 점검용 맨홀 해치로 이어져 있었다.
그 맨홀 해치는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쿵.
정적이 내려앉은 탱크 내부에서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둔탁하고 무거운 타격음이었다.
무언가 사람의 주먹이나 이마 같은 단단한 질량이, 15밀리미터 두께의 강철 벽을 안쪽에서 바깥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타격이 가해질 때마다 페인트가 벗겨진 탱크 외벽 강판이 눈에 띌 정도로 미세하게 볼록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강태식은 렌치를 꽉 쥔 채 탱크 옆면에 달린 지름 20센티미터의 방탄 유리 점검창(Sight Glass)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어두운 탱크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플래시를 비추었다.
탱크 안에는 섭씨 영하 2도의 차가운 검은 시추액이 절반쯤 차 있었다. 기름 표면은 거울처럼 잔잔했다.
그리고 그 검은 수면 바로 아래, 불과 5센티미터 깊이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박 반장이 아니었다.
이틀 전, 지하 3,200미터 고압 분출이 시작되던 첫날 배관 점검 중 실종되었던 3년 차 막내 시추원, 최민재였다.
안전모도 벗겨진 채 흠뻑 젖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얼굴. 피부는 하얗게 짓물러 있었지만, 부패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방금 찬물에 얼굴을 담근 사람처럼 생생했다.
강태식의 숨이 멎었다. 그의 시선이 시신의 두 눈으로 향했다.
민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초점을 잃은 백탁의 눈동자가 유리창 너머 강태식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민재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기포가 새어 나오는 대신, 수백 가닥의 검은 실지렁이 같은 유기체들이 혀뿌리를 뚫고 솟구쳐 나와 점검창 안쪽 유리를 찌르르르 긁어대기 시작했다.
“……가, 감독님. 밑바닥에…… 빈 공간이 있어요……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폐가 숨을 쉬고 있어요……”
치직—! 무전기에서 비상 경보음이 찢어지듯 울려 퍼졌다.
[감독님! 피하십시오! 1호 머드탱크 내압 센서가 폭발 한계를 넘었습니다! 밸브가 역류합니다!]
머드탱크 상부 배기 밸브가 굉음을 내며 허공으로 튕겨 날아갔다. 수천 톤의 차가운 검은 오일이 천장을 향해 분수처럼 폭발하며 쏟아져 내렸다.
침수된 머드 모듈을 탈출한 생존자들.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 해저 3,000m의 폭발방지장치(BOP)를 수동 폐쇄하는 것뿐이다. 포화잠수 챔버가 칠흑의 바다로 내려가고…… 바다 밑바닥 전체를 덮은 거대한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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