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울릉분지 8광구 심해저] [소설판 3편] 흑조(黑潮)의 심연 : 심해 3,000m의 눈 (The Abyssal Diver) / 시추선 '해랑 4호' 조난록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동해 울릉분지 8광구 심해저] [소설판 3편] 흑조(黑潮)의 심연 : 심해 3,000m의 눈 (The Abyssal Diver) / 시추선 '해랑 4호' 조난록

SUBSEA DEPTH (BOP 2,980m)
500m
WATER TEMP / WATER PRESSURE
8.2℃ // 50 bar
※ 화면을 터치하거나 스크롤하면 현장 계측 음향이 활성화됩니다.
DEEP SEA HARD-SF // EPISODE 03
흑조(黑潮)의 심연 제3편 : 심해 3,000m의 눈 (The Abyssal Diver)
기록: 한국석유공사 울릉분지 8광구 심해 탐사대 // 해저 2,980m 웰헤드 // 포화잠수팀 이민우
[설비 고증: 수중 폭발방지장치(BOP)와 포화잠수]
해저 2,980m에 안착된 400톤짜리 BOP(Blowout Preventer)는 비상시 두께 수십 센티미터의 강철 전단 칼날인 '블라인드 쉐어 램(Blind Shear Ram)'을 유압으로 물려 시추관을 으스러뜨리고 유정을 완전 차단한다. 원격 Mux 케이블이 끊어졌을 때 유일한 방법은 작업급 ROV(무인잠수정)와 헬리옥스 가스 가압 잠수벨(PTC)을 내려 핫스탭(Hot Stab) 유압 포트에 오일을 직접 강제 주입하는 것뿐이다.

머드 모듈의 폭발로 선체 지하 3층은 지옥으로 변했다. 강태식은 유독가스와 검은 진흙을 뒤집어쓴 채 방화 격벽을 간신히 닫아걸고 중앙통제실로 생존자들을 퇴각시켰다. 박 반장을 포함한 현장 인원 3명은 1호 머드탱크 밸브 안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치이이익—.
통제실 통신 콘솔 앞, 서도진 기술원이 붉은색 비상 스위치 커버를 젖히며 떨리는 손으로 소리쳤다.

[감독님! 통제 불능입니다! 선내 배관 압력이 파열 한계를 넘었습니다. 지금 당장 EDS(비상 라이저 분리 시퀀스) 발동해야 합니다! 해저 연결부를 폭파하고 시추관을 끊어야 배가 삽니다!]

“안 돼.”

강태식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라이저를 그냥 끊어버리면 해저 3,000미터 유정이 완전 개방된다. 차단 밸브가 열린 채로 끊으면 섭씨 영하 2도의 저 검은 물질이 동해 심해저 전체로 뿜어져 나와. 게다가 해수면이 온통 젤 상태로 굳었는데 시추관을 끊고 표류하면 구명정 하나 못 띄우고 다 같이 굶어 죽는 거야.”

“그럼 어떡합니까! 통제실 원격 유압 신호선(Mux Cable)이 먹통입니다! 컴퓨터로는 해저 밸브를 잠글 수가 없다고요!”
“현장에 내려가서 잠근다.”

REC [PTC-BELL-CAM]
1998-10-13 03:05:12
포화잠수 챔버 하강 실황
▲ [CH-21 BELL] 헬리옥스 가스로 가압된 3인승 내압 잠수벨(PTC) 내부 이민우 팀장 하강 화면

수심 3,000미터. 수압은 300기압. 1제곱센티미터당 300킬로그램의 압력이 내리누르는 암흑의 세계였다. 인간의 육체가 직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깊이가 아니었다. 3인승 내압 잠수벨(PTC)과 티타늄 로봇 팔이 달린 작업급 심해 무인잠수정(ROV)을 연동해야만 가능한 작전이었다.

새벽 3시 05분. 선체 하부 다이빙 문풀. 잠수벨과 작업급 ROV ‘오션-아이 1호’가 윈치 크레인에 매달려 짙은 안개 속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풍덩. 잠수벨이 차가운 검은 수면을 뚫고 하강하기 시작하자, 선체 통제실의 대형 스크린 6개에 ROV가 송출하는 심해 영상이 실시간으로 떠올랐다.

[수심 500m…… 수온 8.2℃…… 하강 속도 분당 40m 정상.]
[수심 1,800m…… 태양광 완전 소멸. 수온 2.1℃. 외벽 투광기 점등.]

수심 1,500미터를 넘어서자 바다는 완전한 무채색의 진공 상태로 변했다. 플랑크톤이나 심해 어류의 잔해인 ‘바다눈(Marine Snow)’이 눈발처럼 흩날려야 할 화면은 기이할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아니, 맑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의 유기물 입자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죽은 공간이었다.

REC [ROV-SUBSEA-BOP]
1998-10-13 03:18:44
해저 2,980m BOP 폭발방지장치
▲ [CH-24 ROV-1] 수심 2,980m 해저 바닥에 안착된 400톤급 수중 폭발방지장치(BOP) 외관

[수심 2,850m…… 수압 285bar…… 수온 영하 1.8℃.]

잠수벨 안에서 이민우의 거친 숨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전해졌다. 헬륨-산소 혼합기체를 들이마시는 특유의 금속성 변조 음성이었다.

[통제실, 여기는 잠수벨. 외벽 티타늄 선체에 결빙 현상이 일어납니다. 서치라이트 유리창 겉면에 살얼음이 얼고 있어요. 라이저 파이프를 따라 유도 케이블 하강 중입니다…… 전방 50미터에 웰헤드 실루엣 식별됩니다.]

ROV의 1,000와트 LED 투광기가 해저 바닥을 비추었다. 스크린을 지켜보던 강태식과 서도진의 호흡이 동시에 멎었다.

해저 2,980미터 평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야 할 400톤짜리 강철 구조물, 폭발방지장치(BOP)의 모습은 처참했다.
두께 30센티미터의 특수합금 프레임이 마치 거인의 손아귀에 쥐어짜인 깡통처럼 안쪽으로 처참하게 뒤틀려 있었다.

REC [BOP-MANIFOLD-MACRO]
1998-10-13 03:22:05
BOP 강철 밸브를 휘감은 검은 유기물 촉수
▲ [CH-26 TENTACLE] 웰헤드 차단 밸브를 으스러뜨리며 박동하는 검은 유기체 혈관망

그리고 그 강철 매니폴드 주위를, 굵기 2미터가 넘는 검은 근육질의 혈관 다발들이 뱀처럼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BOP 틈새로 검은 점액을 분수처럼 내뿜을 때마다, 기계 외벽을 감싼 검은 유기물 표면의 피부 조직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해저 바닥을 메트로놈처럼 일정하게 쿵, 쿵, 울리고 있었다.

[가, 감독님…… 저건 기계 고장이 아닙니다. 시추공이 뚫린 게 아니에요. 우리가…… 무언가의 살갗을 뚫고 들어온 겁니다.]

“이 팀장, 정신 차려! 쉐어 램 핫스탭 포트 찾아! 로봇 팔로 유압 호스 꽂아야 해!”

[포트가 안 보입니다! 전부 검은 살점으로 뒤덮여 있어요! ROV 수평 이동시킵…… 어? 잠깐. 이상합니다. 음향 측심기(Sonar)가 안 먹힙니다. BOP 뒤편 해저 바닥이 평지가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거긴 퇴적 진흙 평원이다.”

[아닙니다…… 수심 3,000미터 바닥 전체가…… 위로 솟구치고 있습니다!]

ROV의 카메라가 천천히 BOP 뒤편, 칠흑 같은 암흑 속 심해 평원을 향해 틸트업(Tilt-up)되었다.

투광기 빛이 닿는 어둠의 한계선.
축구장 세 개를 합쳐놓은 것보다 거대한 해저 퇴적층 전체가,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고래의 등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수면을 향해 융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융기하는 검은 대지 한가운데에서—
직경 40미터에 달하는 무저갱 같은 거대한 점액질 동공이 천천히 열렸다.

가장 깊은 바다의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색을 띤 그 거대한 눈동자가, 3,000미터 허공에 떠 있는 시추선 '해랑 4호'의 선저 바닥을 똑바로 응시했다.

[음향 소나 파열 및 수압 충격 경보]
파창—! 수압 한계를 버티지 못한 ROV 전면 카메라가 폭발했다.
화면이 거친 백색 잡음으로 지직거리기 직전, 통제실 스피커를 찢고 들어온 것은 수심 3,000미터 암반 전체를 진동시키는 거대하고 나지막한 저주파의 고동 소리였다.
[다음 편 예고: 제4편 - 올블랙 (Total Blackout)]
해저에서 솟구친 충격파가 라이저 파이프를 타고 선체를 강타하며 메인 발전기 4기가 전멸한다. 칠흑 같은 암전 속, 붉은 비상등 아래로 수백 개의 젖은 손들이 통제실 방탄유리를 깨부수기 시작하고…… 강태식은 최후의 자침(Scuttling) 레버를 손에 쥔다.
심연의 괴물

댓글 없음:

댓글 쓰기